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 26

 

무엇 하나 당신께

떳떳하게 내놓은 게 없는데

어느 새

남이 되어 가는 당신은

지리한 여름 끝에

손님같이 맞은 가을처럼

낯이 익기도 하고 설기도 하지만

언제든가 ---

확실한 기억을 세우지 못하고

다시 또 주저앉는 기억만

설워해야 하나 봅니다.

세상에서 당신 하나 잊기가

태산처럼 어려웁고

당신 하나 잊기보다

섬기기가 더 어려운 이유는

당신을 잊는 것은

제 자신의 허락이지만

당신을 섬기는 것은

당신의 허락을 필요로 하는

조용한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참 많이도 참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을 제게 옭아맬 수 있는 조건보다

참 많이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차라리 당신에게 속하고 싶은 조건으로 남아

당신의 생활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