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 88
당신을 사랑하는 일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현실인데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차라리
당신을 잊는 것이
제가 오래 사는 길임을 압니다.
제 가슴에서
당신을 삭여내는 일이 몹시도 어려웁고
어떤 때는
이 엄청난 사실들이
제 일이 아닌 양
반문하고 일어서는 가슴 한 쪽을 느낍니다.
진정,
그 어느 한때도 당신을 잊고 싶지 않지만
제게 남겨진 수많은 날을 기억한다면
깡그리 잊어야 하는 일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스물 다섯의 마지막 겨울에서
당신 생각마저 얼어붙어
다음 계절엔
줄줄이 당신이 따라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만난 후론
줄곧 제게는 겨울뿐이었고
혹독한 추위를 떨며
감기처럼 콜록 콜록 사랑을 앓았습니다.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일도 다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덜어지지 않는 당신의 기억을
누구 탓으로,
그 무엇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지요.
당신을 잃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오랜 소망은 어김없이 제게서 빗겨나갔고
이젠 또 무엇 때문에
제가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떳떳이 얘기해야 할지
자꾸만 깊이를 잃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