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사람이야기

마음을 길어 올리다…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Vitae Lux에서 레슬리 가렛의 목소리로 듣는 ‘Let it be’까지, 밤 풍경을 비추는 한 줄기 불빛처럼 평화와 안식의 불빛이 되어줄 이 음악들을 당신의 밤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길 바랍니다.

마음을 길어 올리다…
밤이 긴 나라에는 어김없이 신화와 전설이 발달되어 있다. 이야기 없이, 음악도 없이 견디기에는 밤은 너무 길고 쓸쓸하다.
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멀리서 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에 고여 있는 나의 이야기다.
내 것이면서도 나와 서먹했던 이야기들, 깊은 우물처럼 두레박을 내려야 건져 올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음악은 당신의 마음에 내려지는 두레박. 첨벙, 음악 한 곡이 당신의 우물에 내려질 때, 잊고 있던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또 한 번 두레박이 내려질 때 잊고 있던 시간이 떠오를 것이다.
다시 한 번 두레박이 내려질 때에는 서먹해진 나에게 조금 다가앉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레박을 걷어 올릴 때면 퍼낸 만큼, 덜어낸 마음만큼 홀가분해진 나를 발견할 것이다.

루이제 린저는 그녀의 대표작 ‘생의 한 가운데’에서 주인공 ‘니나’의 영혼을 빌려 이렇게 썼다.
‘우리에게 밤이 필요한 것처럼 비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우리는 ‘루이제 린저’와 ‘니나’의 영혼을 빌려 우리는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밤이 필요하고, 비밀이 필요하듯, 음악이 필요하다’고...

가장 자유로운 상태를 ‘홀가분함’이라고 표현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한 장의 종이처럼 홀가분한 밤을 위해 이 음악들을 바친다. 트럼펫이 밤의 문을 열어주고, 다정한 목소리가 깊은 잠을 위해 커튼을 내려줄 것이다.
<당신의 밤과 음악> 제작팀
프로듀서에게는 '나의 집'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내게는 '당신의 밤과 음악'이 그런 프로그램이다.
나는 '당신의 밤과 음악'이라는 집에 세 번 깃들었다. 첫 만남은 93년 봄. Bill Douglas의 Hymn을 시그널로 정하면서 첫 둥지를 틀었다.
'Hymn'은 16년째 '당신의 밤과 음악'을 지키고 있는 '그리운 초인종' 같은 음악이다.

두 번째 만남은 99년 가을. ‘FM 가정음악’의 <4계시리즈>를 마치고 친정집 같은 '당신의 밤과 음악'의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이 무렵엔 김미라 작가와 호흡을 맞추었던 '밤의 우체국'이라는 코너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코너를 받아 적으며 텔레파시를 끊임없이 보내주던 청취자들은 잘 지내시는지...
그리고 2007년 가을, 나는 오랜 방황 끝에 솔베이그의 품을 찾아 돌아온 페르귄트처럼 '당신의 밤과 음악'에게로 돌아왔다.

레코드실에서 음반들을 고르고 있으면 요리를 잘하는 주부가 가족을 위한 식탁을 차리듯 행복했고,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할 때면 내가 먼저 위로를 받곤 했다.

나를 위로해 주었던 그 음악들을 모아 '당신의 밤과 음악' 3집을 내어 놓는다.
첫 음악인 'Vitae lux'의 아스라이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가 휴식의 문을 열어주기를...
그리고 마지막 곡인 'Let it be'의 노랫말처럼 그대로 삶이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할 수 있기를...
밤의 음악, 휴식의 음악이 내미는 손을 애청자 여러분이 잡아주시리라 믿는다.
프로듀서 김혜선
밤, 풍경속으로

흑백 필름에 담긴 밤의 풍경이 있습니다.
안개 낀 밤의 공원, 멀리 가로등이 아련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고, 공원의 벤치는 쓸쓸하게 비어 있습니다.

나뭇가지는 잎을 다 떨군 쓸쓸한 밤이지만 화면의 아래쪽을 가로지르는 자동차의 불빛이 쓸쓸함을 슥슥 지워주는 지우개 같습니다.

파리의 밤풍경을 찍은 BrassaI사진 한 장.
오래 전부터 '당신의 밤과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사진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Hymn'이 흐를 때면 늘 이 한 장의 사진을 청취자들을 향해 전송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신의 밤과 음악'이 들려드리는 음악이 이 사진 속의 불빛 같기를 바랍니다.
멀리 있는 가로등의 불빛처럼 은은하게 당신을 비추고, 자동차의 불빛처럼 당신의 쓸쓸함을 지워주는 지우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