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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이야기
신촌 블루스 2집(1989년)

우리 대중가요에서 예나 지금이나 블루스라는 음악은 많이 낯선 이야기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고 댄스 아이돌 가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긴 사이에 이 장르의 입지는 그나마 있던 것마저도 좁아졌다. 1992년 나온 신촌블루스의 4집 앨범, 김목경 등 여타 블루스 아티스트들에 대한 냉담한 반응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불씨를 꺼서는 안 될 의무감에 당착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뛰어났던 흔적들이 과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기한 신촌블루스를 잊을 수 없다.
특히 1980년대 후반을 수놓은 그들의 작품들을 되돌아보면 감히 '한국 블루스'의 매력을 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블루스를 사랑하는 모임으로서, 블루스로 뭉친 프로젝트로서 이들은 서구의 것인 '블루스의 한국적 전이(轉移)'를 지금의 기준에서도 출중한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대들보인 기타리스트 엄인호와 이정선은 고사하더라도 한영애, 정서용, 김현식, 정경화, 이은미 등 이 그룹을 거쳐 간 인물들은 모두가 저마다 강렬한 궤적을 남겼다. 이들의 꾸준한 활약은 근 14년이 되도록 정규 작품을 내놓지 않는 이 그룹의 명성을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다.

1986년, 엄인호와 이정선, 한영애, 이광조 등이 모여 진수한 신촌블루스는 서울의 당시 음악적 메카인 신촌 등지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이름을 알려나간다.
이윽고 1988년 첫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히트곡 '그대 없는 거리'와 '아쉬움' 외에도 박인수의 절창이 극명한 '봄비'와 이광조, 남궁옥분, 이수영의 목소리로도 익숙한 '오늘 같은 밤' 등, 1집은 블루스의 기본 성격에 충실한 수작으로 남는다.

여기서 생긴 탄력은 이듬해의 2집 발매로 이어진다.
한영애를 대신해 공연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던 김현식이 참가하고 음악 스타일에 다변화 바람이 이는 등 두 번째 앨범은 처음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중성을 고려한 화려함 뒤에 블루스를 고집하려는 묵직함, 결국 이와 같은 치열함이 또 하나의 '명품'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그 중 정서용이 부른 '황혼'은 그런 묵직함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산울림 9집(1983)에 담긴 원곡과 같이 듣자면, 김창완의 보컬은 힘의 절제, 그녀의 것은 힘의 충용이다. 외로운 여심을 노래한 '빗속에 서있는 여자'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녀의 가창에는 고저와 강약을 부드럽게 주무르는 능숙함이 묻어나있다.

정서용과 함께 김현식 또한 최고의 기량을 뽐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참여한 3곡만으로도 그의 노래 솜씨 전부를 가늠할 수가 있다.
퍼커션 연주가 일품인 레게의 전형 '골목길'과 브라스 선율이 넘실대는 신나는 '환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의 보컬 애드리브는 가히 국보급이다. '골목길'은 오랫동안 라디오 전파를 수놓았다. 전작에 삽입됐던 '바람인가'와 이문세 3집(1985)에 우선 소개되었던 이영훈의 곡 '빗속에서'가 결합된 블루스 메들리 '바람인가, 빗속에서' 역시 김현식의 광기 어린 절규가 곡의 반 이상을 지배한다.

한편 팀의 리더인 두 사람(엄인호, 이정선)은 개성 있는 기타 연주로 앨범 전반을 이끈다.
자신이 작곡한 곡에서 줄곧 신랄한 기타 플레이를 전개하는 엄인호는 한영애의 2집을 위해 건넸던 '루씰(Lucille)'을 다시 가져와 부르고 있고, '바람인가, 빗속에서'에서는 김현식과 듀엣을 이루어 허스키 보이스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이정선의 경우도 만만치 않다. 특히 몇몇 곡에서 드러나는 그의 노랫말은 자신의 정제된 기타 애드리브처럼 운치를 뽐낸다.
1집에서는 바닷가를 찾아가 상념에 사로잡히더니('바닷가에 선들') 이내 '산위에 올라' 외로움에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공허감에 젖어 통기타 반주 위로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를 읊조린다. 마치 방랑자처럼,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색깔로 노래를 하고 있다.

만약 이 앨범에서 가장 이색적인 트랙을 꼽자하면 그것은 바로 봄여름가을겨울의 몫이 될 것이다.
스페셜 게스트로서 이름을 올린 김종진과 전태관은 보사노바 넘버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으로 앨범의 다각 묘사에 기여하고 있다.

두 기타 명인이 이끈 '일렉트릭 블루스 대향연'은 이러한 자태로 한국 블루스의 보물로 남게 된다.
그 뒤 이정선이 빠지고 두 장의 앨범이 발표되지만 아쉽게도 성과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공연 활동을 중심으로 긴 명맥을 유지해 온 엄인호의 신촌블루스도 이제는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은 노장 밴드가 되었다.
[신촌블루스 V ]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팬들의 기대는 굳건하다. 예전에 얻은 강렬한 전율은 지금도 그들 곁에 생생하게 휘감아 돈다.
글 출처 : 임진모의 명작시리즈
가수 이야기

활동시기 :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전반
데뷔/결성 : 1986년
엄인호, 故 김현식, 박인수, 이정선, 한영애, 정경화, 김형철, 정희남, 이광조, 정서용, 김동환, 이은미, 김미옥, 안희식, 문준호(기타), 강승혁(키보드), 엄주문(드럼), 윤종부(베이스)

미국 흑인 음악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블루스라는 장르를 한국에서 꽃 피운 신촌블루스는 리더 엄인호의 지휘아래 처음에는 신촌 지역의 작은 카페에서 잼 형식의 공연을 하며 자기 만족을 누렸던 그룹이다.

스트레이트한 록의 기법이 다듬어지고 축적되어 결국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이들의 블루스는 20세기 음악의 문법을 장악한 록을 탄생시킨 장르이며 고향을 그리는 흑인 노예들의 갈구와 타향살이의 절규를 승화시켜 소울과도 맥을 같이 하는 음악이었다.
신촌블루스는 그룹에서 활동하던 많은 가수들이 솔로로 독립하면서 수없이 많은 멤버 교체가 있었지만 엄인호가 대들보로 있으면서 4장의 앨범을 통해 블루스라는 흑인 정서의 음악을 한국화 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부산에서 DJ를 했던 엄인호는 1979년 이정선, 이광조 등과 함께 트리오 풍선으로 데뷔했으며 주로 포크록 계열의 음악을 연주하다가 1986년 이정선, 이광조, 한영애, 고 김현식 등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신촌블루스를 탄생시켰다.

1988년에 발표한 이들의 1집은 정통 블루스를 하고 싶었던 이정선이 주축이 되었으며 엄인호의 ‘그대 없는 거리’와 ‘아쉬움’이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들의 공연이 성황리에 이어져 갔다.
다양한 조인트 형식의 세션을 가졌던 이들은 한영애가 빠진 자리를 김현식이 주도적으로 메우고 정서용, 봄여름가을겨울 등이 참여해 다음해 2집을 발표한다.
기존 블루스의 음악에 레게나 펑키, 재즈 등의 다양한 장르를 시시때때로 가미하며 장르의 합종연횡을 거듭했던 이들은 2집에서 앨범의 완성도를 위해 ‘환상’과 같은 곡에서 브라스를 배치했으며 ‘골목길’을 히트시키며 블루스계열의 음악을 주요한 트렌드의 하나로 격상시킨다.

3집부터 이들은 팀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엄인호와 이정선은 음악의 견해 차이를 보여 헤어지고 2인자였던 엄인호에 의해 독자 노선을 걷는 신촌블루스 시대를 시작한다.
엄인호의 음악적 역량이 잘 표출된 이들의 3집에는 ’’90년대를 통해 보컬의 힘을 보여준 정경화, 이은미가 가세해 색다른 블루스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엄인호의 ‘향수’, 김현식의 ‘이별의 종착역’, 연주곡 ‘신촌, 그 추억의 거리’ 등에서 편안한 엄인호식 블루스를 표현하고 있다.

1994년 4집을 발표했지만 전국을 휩쓴 댄스 열풍으로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한 이들은 현재 엄인호를 주축으로 잦은 교체를 보이는 멤버들과 공연 위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1991년 라는 독집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엄인호는 일본의 박보 밴드와 프로젝트 앨범 를 발표하고 한.일을 오가며 활발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01/04 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