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달림의 음악세계
강허달림의 음악을 얘기하기에 앞서, 먼저 그의 살아온 날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시골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일찍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여상에 입학한 뒤에도 기타 중창반 활동을 하며 꿈을 버리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몇 군데의 직장을 거치며 깨달은 건 힘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조리함이었다. 어렵사리 돈을 벌며 두 차례나 서울예전 입학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대신 그 무렵 막 생긴 서울 재즈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남들이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매끄러운 목소리를 재현하는 데 몰두하는 동안, 그는 어릴 때 어렴풋이 익힌 판소리 창법을 고집했다. "쟤는 무슨 국악을 하러 왔대니?" 하는 손가락질도 있었지만, 가수 한영애씨는 특강에서 "우리나라 소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느냐? 자기 본연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소리를 찾는 것이 보컬이다"라는 말로 힘을 북돋웠다. 구구절절이 읊자면 '인간극장'이 될 테니 이 쯤에서 그만하고, 이제부터는 음악 얘기에 들어가자. 강허달림 1집 [기다림, 설레임]은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앨범이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목화밭에서 노동을 하며 부른 노래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블루스에는 그들의 고통과 한이 녹아있다. 강허달림 1집에는 포크 등 다른 장르적 요소도 있다. 그리고 몇몇 곡들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블루스라 부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강허달림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이 앨범은 블루스라는 색채를 온전히 뒤집어쓴다. 스스로 "뽕짝이나 재즈도 내가 부르면 다 블루스가 된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블루스적이다.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된 데는 우선 살아온 삶을 들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몸에 익은 가난과 녹록치 않은 사회생활에서의 설움 등은 오래전 흑인 노예들의 심정을 떠올리게 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체화한 블루스의 정서가 목소리에 자연스레 스며든 것이다. 그의 목소리의 또 다른 요소는 판소리다. 판소리와 블루스는 닮은 점이 많다. 하위계급, 민초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강허달림 창법의 판소리적 요소는 지극히 한국적인 블루스로 이어진다. 강허달림표 블루스의 특징은 결코 절망과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절망의 나락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다. 타이틀곡 '기다림, 설레임'에서 "말없이 보내주고 기쁠 수 있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읊조리고 나선, 자전적 삶을 노래한 '독백'을 통해 "그래 쓰러져 또 다시 쓰러져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웃음 짓고 아무 일 없단 듯이 그렇게 그게 나인 걸"이라고 노래한다. 리드미컬한 '춤이라도 취볼까'를 듣다보면 어깨가 들썩인다. 1집 앨범에는 2005년 발표한 미니앨범의 네 곡이 다시 실렸는데, 완전히 새롭게 편곡한 것이 눈길을 끈다. 사실 미니앨범에 담긴 곡들은 블루스적인 요소들이 한결 약했다. 오히려 포크나 팝 쪽에 훨씬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선 '저스트 블루스' 채수영씨의 블루지한 기타가 더해지고('춤이라도 춰볼까', '독백') 강허달림의 목소리는 골이 훨씬 깊어졌다. 강허달림의 이번 앨범은 직접 만든 '런뮤직' 레이블을 통해 나왔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 연습실을 거점으로 삼은 1인 회사다. 이번 앨범을 내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짐작케 한다. 방송이나 언론매체를 통한 홍보는 꿈도 못 꾼다. 그저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노래할 뿐이다. 그는 그렇게 세상에 끊임없이 손을 내민다. 이제는 세상이 그에게 손을 내밀 차례다. 우선 그의 '독백'부터 들어보자. [REVIEW]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서정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