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듣다가, '음악 죽인다'라는 말을 중얼거려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탱고 블루(Tango Blue)'라는 음악이었다. 결국 음반 속의 '슬리브'를 꺼내 읽어야 한다. 01. Desire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은 결국 욕망하는 기계인가? 나의 시간이 욕망의 굴레에서 만이라도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02. Confession 내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의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든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곳에서 항상 나를 구해 주었던 것은 짧은 고백이었다. 03. Smile 난 나의 미소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볼 수 없는 그 풍경의 기억은... 그러나 아직도 가끔 나를 미소짓게 한다. 04. How insensitive 조빔과 시나트라가 다정히 연주하는, 오래된 텔레비전 쇼의 한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 중 하나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축음기와 두 거장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녹음하기 8시간 전에 비제의 '카르멘'에서 모티브를 얻어 탱고 스타일로 편곡했다. 05. Cause We've Ended As Lovers 미치도록 사랑해 본 사람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또 다른 내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이 곡은 내 젊은 날의 사랑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거울이다. 06. Another Day 미지에 대한 상상과 동경은 삶에 대한 가장 좋은 감상이다. 07. Fallen 추락과 타락은 내겐 죽음과도 견줄 수 있는 공포이다. 내게 날개가 있다면, 여기서 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08. Alon Again 어느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나는 또 다시 외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들 때에 나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09. Once 한때 당신과 나는… 지금 당신과 나는… 또 미래의 당신과 나는… 슬픈 질문이지만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한다. 지금은 브로드웨이 쇼에서 배우로 더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Hoon Lee가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10. Compass 살아가는 길은 있는데 왜 거기에 나침반은 없을까? 11. Tango Blue 탱고는 둘이 추는 춤이지만 왠지 혼자 추는 것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너무 아름다워서인가? 12. I just want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던 시기에 이 곡을 썼다. 그 당시 나와 함께 연주를 많이 했던 Claudia가 전반부의 멜로디를 가져와 이 곡을 쓰게 됐다. 원래는 보컬도 들어 있다. 13. Quiet Rain 조용히 적시는 빗소리는 고된 삶을 축복해 주는 선율이다. 14. Don't imagine 때로는 상상하지 말아야 될 것이 내겐 너무 많다. 15. Etude 그동안 내가 연습할 때 녹음해 보았던 트랙을 묶어 만들었다. 18. Sad But True 슬프지만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슬픔에는 이유가 있다. 나의 허름한 뉴욕 아파트에서 이 곡을 혼자 녹음 할 때가 가끔 생각난다. '모그'는 이런 글들을 CD의 인쇄물에 남겨 놓고 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마음을 조금 읽을 수 있다. 더불어서 그는 음악과 더불어 끊임없는 생각들을 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앨범, 연주가 이야기
이 음반을 듣는 순간 비로소 베이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다. 영혼 깊숙한 곳에 머무는 베이스의 따스한 울림, 국내최초 베이스기타의 진수를 선보일 <모그 - Desire>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How Insensitive와 스티비 원더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를 새롭게 들을 수 있는 한편, 베이스만의 광활한 넓이와 에너지를 피아노, 노래와 함께하는 절묘한 조화를 맛볼 수 있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초월 우리나라 '음악 동네'가 워낙 터가 좁은 까닭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거나 화제가 떠돌면 금세 입 소문을 타고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베이시스트 모그(Mowg, 본명 이성현)의 등장 때도 역시 그랬다. "굉장한 놈이 나타났다" "국내 최고의 테크닉을 가졌다"는 등의 찬사가 그의 곁을 따라다녔다. 그 소문도 잠시. 찬사를 채 확인하기도 전에 모그는 한국을 떠나 다시 뉴욕으로 갔다. 드디어 그가 다시 돌아왔다. 예의 바르게 빈손도 아니다. 'Desire'라는 솔로 데뷔 앨범을 선물로 가지고 왔다. 모그의 재능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이 앨범은 그에게 쏟아졌던 찬사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증거품이다. 뉴 에이지가 주가 되면서 재즈, 펑크, 록을 넘나드는 장르를 거침없이 소화하고 있다. 음악에 대한 열망과 욕심,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 두 장의 CD도 모자라다. 음반에서 그의 또 다른 재능을 확인할 수도 있는데, 바로 작곡가로서의 모그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How Insensitive'와 스티비 원더가 작곡하고 제프 벡이 연주해 유명해진 'Cause We've Ended as Lovers', 이 두 곡을 제외하고 16곡 모두 직접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음악 조리법'을 아는 요리사 같은 작곡가다. 자신만의 짜임새 있는 레서피를 가지고 요리를 진행한다. 은은한 감성이 묻어나는 애피타이저를 내며, 화려한 데코레이션이 곁든 메인 디시를 선보인다. '영혼 깊숙한 곳에 머무는 베이스의 따스한 울림'이라는 음반 홍보 문구처럼 'Desire'의 밑바탕은 베이스의 저음을 십분 활용한 감미로운 음악들이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장점으로 바꾼 모그의 손놀림이 정말 놀랍다. CD 1에 실린 타이틀 곡 'Desire'나 'Smile' 'Another Day' 등에서 베이스는 화려하게 솔로 악기로 독립하고 있으며 CD 2에 실린 공연 실황 곡 'He's Gone with Wind'와 'For What'에서는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폭발하고 있다. 열네 살 때 베이스를 시작한 모그는 스탠리 클락이나 자코 패스토리우스, 마커스 밀러 같은 베이시스트의 음악을 듣고 프로 뮤지션을 꿈꿨다. 고등학생 시절 이미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했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한다는 신념으로 스무 살 나던 해 미국으로 갈 짐을 꾸렸다. 미국 친구들이 부르기 시작한 '모그'라는 별명은 '정글북'의 주인공 모글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늑대의 야성을 늑대의 무리에서 배운 모글리처럼 모그 역시 음악적 감각을 뉴욕의 언더 신에서 익힌 것이다. 열정과 재능을 곧 인정받아 뉴욕의 클럽과 공연장을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는 록 밴드와 재즈?펑크 밴드를 모두 거쳤고 심지어는 이를 동시에 병행하기도 했다. 실험은 계속 되어 김덕수 사물놀이나 현대무용가 안은미와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가진 음악적인 욕망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늘 엉뚱한 생각과 행동으로 좌중을 웃기며, 나이답지 않은 천진한 미소를 지을 때는 더더욱 그 속내를 모르겠다. 다만 'Desire'라는 앨범 타이틀에, 또 수록된 18곡의 작품들에서 그 욕망이라는 게 결코 단순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을 뿐이며, 그 욕망은 곧 현실로 이루어지리라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글 : 권오경(재즈컬럼리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