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상여소리
진도상여소리

진도에는 민속과 예술이 널려있다. 그곳의 관혼상제, 모든 의식들은 예술과 맞닿아 있다.
이십년쯤전 진도에 답사를 갔다. 그때 우연히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상여 맨 앞에서 어느 여자가 선소리를 맡아 질러내고 있었다. 그 만가는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웠고 슬펐다.
그때의 상여행렬 앞에서 선소리를 한 분이 나중에 알고보니 조공례(曺功禮)선생이었다. 진도는 조공례선생이며, 김대례(金大禮)선생, 그리고 박병천(朴秉千)선생의 고향이다. 이분들은 폭넓으면서도 개성적인 예술의 세계를 갖고 있거니와, 그밖에도 수많은 진도 출신의 예술가들은 악기나 소리 한 분야에서만이 아닌 여러 방면에서 달통한 통합적 예술세계를 지니고 있다.

서양의 레퀴엠은 엄숙한 음악이다.

살아있는 생명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 강조되어 있는 분위기는 듣는 이를 압도한다. 영화(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죽어갈 때 들려오는 레퀴엠은 왠지 으스스하고, 장엄할 뿐 생활과 닿아 있는 느낌은 전혀 없다.
진도의 상여소리도 이승이 아닌 세게를 다루고 있는 음악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노래라는 느낌이 강하다. 의식이 노래이면서 삶속에 스며있는 일상의 정서를 건드린다. 망자는 아직도 우리곁에 체온을 남긴 구체적 인물로 노래불린다. 돌아간 사람을 통하여 우리는 유한한 생의 허무감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돌아간 사람을 위하여 부르는 만가는 사실 망자의 가족과 유대꾼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정화시키는 힘을 준다.

이 음반은 조공례가 앞소리를 맡고, 뒷소리는 설재림과 박종단(朴鐘旦), 김귀봉(金貴奉), 이완순(李完順)부부, 그리고 조공레의 딸인 박동매가 함께 부른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출반했던(진도상여소리)음반은 기악반주로 이루어 있으나, 이 상여소리는 실제 상여나갈 때의 상황을 구현한 것으로 징과 장고, 꽹가리로만 반주하고 있다.
강한규가 징, 박병천이 장고, 이태백(李太白)이 꽹가리를 맡았다. 타악기로만 반주하는 음악은 의식성이 휠씬 강렬하게 표출되는 특징을 갖는다.

조공례의 소리는 판소리 창자처럼 화려하지 않고 질박하며 자연스럽다. 그이의 소리는 두툼하며 묵직하다. 특히 굵고 힘차게 질러내는 고음은 전율적인 것으로 조공례 특유의 득음이라 할 수 있다.
(진도상여소리)는 대개 계면조로 짜여져서 슬픈 심사가 강조된다. 이 음반은 크게 보아 두 대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앞대목은 긴염불, 중염불, 애소리, 재화소리로 되어 있고, 뒷대목은 하직, 아미타불, 천궁, 가래소리 등으로 짜여져 있다.
유영대 교수
조공례 [曺功禮, 1925~1997]

1925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1942년 간이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스승 없이 아버지 조정옥 슬하에서 자연스레 창을 익히기 시작한 이후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면서 남도들노래를 계승, 보급하는 데 힘쓴 국악인이다.

197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창 분야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뒤 KBS 남도명창대회 우수상(1981), 전국명창대회 우수상(1990), 제8회 전국민요경창대회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남도들노래는 호남지방의 농요(農謠)로, 모를 찔 때 부르는 《모뜨는 소리》로 시작해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못소리》, 김을 맬 때 부르는 《절로소리》를 거쳐 농부들이 마을로 돌아올 때 부르는 《길꼬냉이로》로 끝난다.

조공례는 기층 민중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박하고 수수하면서도 전혀 위축됨이 없는 꿋꿋한 소리로 이 남도들노래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강강술래》 《진도 상여소리》 《진도아리랑》 《진도 다시래기》 등 호남지방 민요에 두루 능해 《뿌리 깊은 나무 조선소리 선집 10》 《조공례의 대지의 창(窓)》 《진도 들노래》 등의 음반을 남기기도 하였다. 1997년 죽은 뒤에는 외동딸 박동매가 남도들노래 조교로 대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