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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bo

로보(Lobo)는 서정성 짙은 발라드로 70년대 국내 팝송 팬을 사로잡았던 가수로, CCR, 카펜터스, 존 덴버 등과 함께 '팝송의 시대' 한복판에 서있었던 추억의 인물이다.

당시 김세환은 그의 노래 "Stoney"를 개사해 불렀고 윤항기도 그의 "We`ll be one by two together"를 "우리 함께 간다네"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노래했다.
이밖에도 국내에서 사랑받는 그의 곡들은 엄청나게 많다. "I`d love you to want me", "A simple man", "There ain`t no way"등이 70년대 말까지 줄기차게 애청되었다. 뒤에 나온 곡들인 "How can I tell her"와 "Don`t tell me good night"도 다운타운가를 강타했다.

이처럼 달콤한 멜로디와 화려한 연주, 시적인 가사로 국내에서 우대 받았던 로보는, 정작 본고장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만큼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가 부른 노래 가운데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권에 올랐던 노래는 3곡에 불과했다. "Stoney"같은 곡은 싱글로도 발표되지 않아서 미국인들에게는 제목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이다.
얼마 전 앨범 홍보차 내한한 로보 자신도 “내 노래가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의 '숨겨진' 노래를 발굴해 국내 애청 팝송으로 만든 주역은 당시의 라디오와 다운타운가 음악 다방의 디스크 자키들이었다.
그들은 알려진 곡이든 묻혀 있는 곡이든 '우리정서'에 맞는 노래들을 뒤져내 전파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디제이들의 노력으로 우리의 '듣는 귀' 이른바 음악 청취의 패턴이 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팬들은 언제나 감미로운 선율 중심의 노래를 좋아했다.

싱어송 라이터 로보는 1943년 미국 플로리다주 Tallahassee에서 Roland Kent LaVoie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미국인이다.
미국 사람 같지 않은 얼굴과 긴 생머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인디언 혈통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여섯 명의 형제와 함께 자란 로보는 1961년 짐 스태포드(Jim Stafford)와 그램 파슨스(Gram Parsons), 그리고 드러머 존 코닐(Jon Corneal)이 포함된 그룹 The Rumours에서 연주 실력을 쌓았다.

1964년 South Florida 대학에 재학중이던 로보는 Sugar Beats라는 밴드에서 연주하며 프로듀서인 Phil Gernhard를 만나게 된다. 비록 밴드는 단명하였지만 Phil Gernhard와의 인연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Phil Gernhard는 후에 로보의 모든 힛트 곡들을 프로듀스하게 되었다.

60년대에 로보는 US Male, The Uglies, Me and the Other Guys 등의 밴드와 함께하게 되는데, Me and the Other Guys에서 70년대 초 로보의 투어링 밴드의 멤버가 되었고, 1989년 로보의 컴백 앨범을 프로듀스하게 되는 Billy Aerts를 만나게 된다.
Phil Gernhard와 다시 함께 손잡게된 로보는 1969년 Laurie 레코드사에서 "Happy Days In New York City"와 "My Friend Is Here"가 담긴 그의 첫 솔로 싱글을 발표하였다.

1971년 Roland Kent LaVoie는 스스로 로보(로보는 스페인어로 늑대라는 뜻이다)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 해에 Phil Gernhard와 함께한 싱글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를 Big Tree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로보는 Big Tree 레코드사에 첫 메이저 힛트를 안겨주었다.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는 미국 차트 5위, 그리고 영국차트 4위에까지 오르는 힛트를 하였다.

1971년 5월 로보의 첫 데뷔 앨범인 [Introducing Lobo]가 발표되었고 같은 해에 싱글 "She Didn't Do Magic"와 "California Kid And Reemo"를 발표하였다. 이즈음 Big Tree 레코드사가 Bell 레코드사로 합병되는 와중에 로보의 두 번째 앨범 [Close Up]은 발표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1972년 앨범 [Simple Man]을 발표한 로보는 "Don't Expect Me To Be Your Friend"와 "I'd Love You To Want Me"로 탑 10 힛트를 이어갔다.
로보의 대표곡이 되어버린 "I'd Love You To Want Me"는 1972년 빌보드 차트 2위에까지 올랐으며, 이후 1974년 중반 독일에서 차트 1위에, 영국에서는 차트 5위에 오르는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73년 발표한 앨범 [Calumet]은 "It Sure Took a Long, Long Time", "How Can I Tell Her" 그리고 "Standing at the End of the Line" 이렇게 세 곡의 탑 40 힛트곡을 배출하였다.
1974년엔 처음으로 로보의 곡이 아닌 곡이 포함된 네 번째 앨범 [Just A Singer]를, 그리고 1975년엔 다섯번째 앨범 [A Cowboy Afraid Of Horses]를 발표하였다.

1976년 Big Tree 레코드사를 떠난 로보는 유럽에서 [Come With Me]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다. 1978년에는 Phil Gernhard가 프로듀서로서 마지막으로 함께한 싱글 "You Are All I Ever Need"를 발표하였다. 1979년 차트 23위에 오른 "Where Were You When I Was Falling in Love"를 끝으로 그의 노래를 더이상 차트에서 볼 수 없었다.

자신의 레코드 프로듀싱에 만족하지 못했던 로보는 1981년 Nashville로 가서 자신의 레이블인 Lobo Records를 설립하여 그의 형이 만들어준 곡인 싱글 "I Don't Want To Want You"를 발표하였다.
Lobo Records는 1985년 Evergreen Records가 되었고, 로보는 "Am I Going Crazy", "Paint The Town Blue" 두 장의 싱글을 더 발표하였다. 이후 컨트리 가수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한 생활을 즐겼다.

반면 아시아 지역에서 로보의 인기는 1987년과 1988년 그의 힛트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며 더욱 부채질이 되었다.
1989년 로보는 10년만에 새로운 앨범 [Am I Going Crazy]를 타이완의 UFO/WEA records에서 발매하기도 하였다. 아시아지역의 인기로 그의 모든 앨범들이 컴팩트디스크로 재발매되었고 로보는 싱가폴에 있는 PonyCanyon Records와 계약을 하여 1994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앨범 [Am I Going Crazy]의 곡들과 몇 곡의 신곡이 추가된 앨범 [Asian Moon], 그리고 다시 녹음된 로보의 힛트곡들과 몇몇 다른 아티스트들의 커버곡들로 이루어진 앨범 [Classic Hits]가 그것이다. 또다른 아시아 레코드사와 계약으로 1997년 팝 스탠더드 곡들의 보컬과 연주 두 가지 버전으로 이루어진 앨범 [You Must Remember This]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7년 동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인하여 로보는 결국 고향 플로리다로 돌아가게 되었다.

잠시동안의 휴식을 가진 후 2000년 독일 레코드사인 Gmbh Entertainment와 계약한 로보는 Billy Aerts와 함께 공동 작업한 크리스마스송 "A Big Kid's Christmas"와 "Late Christmas Eve"를 녹음하였고, "Caribbean Disco Show", "Let It Be Me", "Who'll Stop The Rain" 그리고 "Different Drum" 등의 싱글을 녹음하였다.
그리고 아시아지역에서 다시 살아난 그의 인기의 여파로 2006년 동남아시아 투어링을 갖기도 하였다. 로보는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갖기도 하였다.

로보가 '흘러간 가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잊을 수 없는 가수'인 것도 분명하다.

글 출처 : 중년의 노래, 잊을 수 없는 P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