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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나(morna)의 여왕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는 1941년 케이프 베르데(Cape Verde)의 해안마을 민델로(Mindelo)에서 태어나 일곱 명의 남매와 함께 자랐다.
그의 아버지 프란시스꾸 샤비에르 다 끄루스(Francisco Xavier Da Cruz)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그곳의 유명한 작곡가인 레자(B. Leza)와 사촌관계였다. 10살 때 레자가, 2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형제들은 하나 둘 이민을 떠나기 시작했고, 에보라는 12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 형제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케이프 베르드(Cape Verde)에 남아 있게 된다.

17살 때부터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는 곧 그녀의 친근하고 감성적인 독특한 보이스 칼라와 매력적인 공연으로 인해 1960년대 후반에는 케이프 베르드(Cape Verde) 전체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 무렵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테이프 두 종이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에서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1970년대 중반 그녀는 더 이상의 활동을 중단하게된다.
음악만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는 열악한 주변 여건과 세 번의 결혼생활을 실패하는 개인적 불행이 겹치며 엄청난 폭음과 폭연으로 이어지는 시련의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에보라가 제 2의 음악인생을 시작한 것은 1985년 45세의 나이에 포르투갈로 건너가면서부터다.
그곳에서 에보라는 케이프 베르드(Cape Verde)출신 여가수들의 앤솔로지 형식의 앨범을 녹음하게 되고 때마침 그녀의 음악에 매혹된 케이프 베르데 출신의 젊은 프랑스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호세 다 실바(Jose Da Silva)의 설득으로 함께 프랑스로 건너와 음악작업을 하게 된다.

그 결과물로 1988년 그들은 그녀의 첫 번째 앨범 [La Diva Aux Pieds Nus](맨발의 디바)을 발표하고 파리에서 첫 공연을 가지게 된다.
연이어 두 번째 앨범 [Distino Di Belita](1990)을 발매하지만 미미한 반응을 얻는데 그친다. 그때까지 소수의 케이프 베르데 팬으로 부터만 지지를 받던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는 세 번째 앨범 [MarAzul](1991)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유럽 언론과 관객들로 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관심은 곧 열광적인 반응을 바뀌었고 Miss Perfumado(1992)이 발매되자 언론은 그녀를 빌리 홀리데이에 비견하며 경쟁적으로 세자리아 에보라에 대한 지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세자리아의 음악 인생은 기적적인 반전을 하게 된다. 그녀의 파리 콘서트는 모두 매진되며 성황을 이루게 되었고 처음으로 가진 브뤼셀 공연도 큰 성공을 거둔다. 바르셀로나, 몬트리올, 일본, 프랑스를 도는 첫 번째 세계 투어에서 그녀의 공연은 경찰을 동원할 만큼 엄청난 성공과 함께 세자리아 에보라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95년 발매된 Cesaria Evora로 그녀는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동시에 처음으로 가진 북미 투어공연에서는 마돈나, 브랜포드 마샬리스 등과 같은 유명 뮤지션들까지 관람하는 성황을 이뤘고 에밀쿠스트리챠 감독의 영화 언더그라운드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기도 한다.
96년에도 그녀의 경이적인 공연행진은 계속된다. 40회의 프랑스 콘서트, 스위스, 벨기에, 브라질, 독일(11회 공연), 홍콩, 이탈리아, 스웨덴, 미국, 캐나다(30회 공연), 세네갈 그리고 영국에서의 첫 공연에서는 런던 퀸 엘리자베스홀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97년 발매된 Cabo Verde는 또다시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98년 베사메무쵸와 같은 그녀의 애창곡이 실린 첫 번째 베스트 앨범 Best of Cesaria Evora 발매. 99년 Miss Perfumado로 다시 한번 그래미 노미네이트 (프랑스 발매 1992년, 미국 발매 1998년) 새 앨범Cafe Atlantico 발매 이 앨범은 2000년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또한 2000년에는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쿠바.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등) 투어를 한다. 2001년 발매된 음반Sao Vicente di longe 역시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2001년 한해에만 120여회의 공연을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기적같은 성공신화가 넘쳐나는 음악계에서조차도 이토록 극적인 인생의 반전을 이루며 성공한 뮤지션은 드물다. 게다가 그것이 이름도 생소한 조그만 섬나라의 전통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라면 더욱.. 그다지 화려하다거나 기교적이지 않은 그녀의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가수의 그것과는 틀리다.
풍부하고 따뜻한 보이스가 담긴 그녀의 음악에는 원형 그대로의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순탄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과 케이프베르데의 역사가 모르나라는 음악을 통해 형상화되어 있다.

맨발의 디바라는 그녀의 애칭이 단지 마케팅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 수단으로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