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적 흐름
고대의 음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이스라엘, 유대, 페니키아인 팔레스티나, 소아시아, 그리스 등의 나라에서 발달했는데, 로마가 이들 나라를 통일하기 전까지는 각각의 나라에서 개별적으로 발달하였다. 고대 그리스와 같은 나라는 음악을 제사와 오락의 도구로써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철학성, 윤리성 등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논의되기도 했다.
음악의 역사적 흐름을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중세는 봉건 사회 제도의 지배하에 있던 기독교 사회로서, 정치· 문화에 있어서 강력하게 종교적 지배를 받던 시대였다. 따라서, 고대와의 차이를 들면, 노예 제도에서 소작제(小作制)로 옮겨져서 상업 자본의 진출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기의 음악사는 기독교의 의식과 결부시킨 성가(聖歌)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세기에유럽 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기독교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는 그 모태가 된 유대 기독교의 영향으로 음악을 존중하여 초기부터 독특한 의식 음악을 발전시켰다. 또한 교회를 온상으로 하여 많은 작곡가가 배출되었다. 특히 종교 음악의 중심은 성악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성가는, 기본적으로는 고대의 유대 기독교 성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지만, 거기에 지방적인 요소과 가미되어 시리아에서는 시리아 성가, 이집트에서는 코프틱 성가(Coptic Church Music), 에티오피아에서는 아비시니아 성가, 동 로마에서는 비잔틴(Byzantine) 성가 등 각기 그 지방의 고유한 특색을 반영한 성가가 발전하였다. 서유럽에서도 이들 동방 교회의 성가와 지중해 지역의 여러 음악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성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는 토레도를 중심으로 모사라베 성가(Mozarabic), 프랑스에서는 갈리아 지방이 갈리아 성가(Gallican Chant),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아므로시오 성가(Ambrosian Chant) 등이 생겼으며, 서유럽으로 무대가 옮겨지면서 본격적인 중세 유럽의 음악사가 시작된다. 얼마 안 되어 로마의 교회 세력이 크게 팽창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세계적, 보편적인 교회의 이상을 높이게 되지 그때까지 각 교회에서 개별적으로 행해지던 교리와 의식, 성가 등을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성가의 경우, 암브로시오 성가 이래 200년이 지난 후,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업적으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제작하여 마침내 기독교 음악을 통일시켰다. 이 정통적인 교회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성부 음악으로서, 하모니와 대선율이 없는 단순한 것이지만, 그 유동적인 선율은 실로 아름답다. 이것은 유대, 시리아의 음악과 그리스, 로마 음악을 사용하여 6세기 말에 집대성되었고, 11 ~ 12세기에 최고로 번성하였다. 그 사이 9~10세기에 걸쳐 고딕 음악이 생겼다. 중세 음악은 대체로 로마네스크 음악(Romanesque Music), 고딕음악(Gothic Music), 세속 음악(Secular Music) 등으로 크게 구분된다.
로마네스크 음악(Romanesque Music)
그레고리오 성가, 로마풍의 음악이란 뜻으로 초기 기독교 시대의 음악이다.
고딕 음악(Gothic Music)
9세기경부터 15세기까지의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 시대 사이의 음악이다.
고딕 음악에는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걸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발전한 복음음악의 노트르담 악파(School of Notre Dame)와 아르스 안티콰(Ars Antiqua)의 음악이 포함되어 있다.
세속 음악(Secular Music)
종교 음악 이외의 것을 넓은 의미에서 세속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기사들 사이에서 생겨나 서민에게 퍼졌고,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특히 성행하였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에 걸쳐 유럽에는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유럽 여러 나라의 기독교도가 그리스도의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공격한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비록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끝나긴 했어도 이 역사적 사건이 유럽 문화에 끼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이래로 극단적인 종교열은 침체되고, 법왕의 권력은 쇠약해졌으며 아라비아 등 동방의 문명을 유입하여 르네상스가 도래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르네상스로 말미암아 기사도가 번영하여 생활이 화려해졌고,예술 분야에는 낭만적인 바람이 불어오게 되었다. 이 같은 시기에 나타난 것이 트루바두르(troubadour)라는 음악인 들이었다.
즉, 12세기경부터 스페인과 남 프랑스 지방에 살고 있던 음악을 사랑하는 귀족들이 자작시에 즉흥적으로노래를 만들어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여 노래를 불렀는데, 바로 이를 '트루바두르'라고 했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 생긴 '투루베르'도 같은 의미이다.
시의 내용은 사랑 노래와 발라드풍의 이야기, 자연의 찬미 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또한 그들은 예인(藝人)을 고용하여 함께 다니면서 그들에게 자직시를 부르게 했다. 이들을 프랑스에서는 8세기경부터 '종글뢰르(jjongleur)', 영국에서는 '민스트렐(minstrel)'이라고 했다.
13~14세기경에는 독일과 오스트라아에 '미네젱거(minnesanger)'라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등장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사랑의 가인(歌人)'이란 뜻으로 일종의 서정 시인을 가리켰다.
14세기, 독일에서는 '명가수'라는 뜻을 지닌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라는 음악인이 등장한다. 이는 기사도가 쇠퇴하고 서민 계급이 일으킨 일종의 음악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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