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적 흐름

낭만파 음악(19세기)

19세기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그대 사상의 흐름에 따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종교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했으며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마침내는 ☞ 인문주의를 낳게 되었다.

16~17세기에 이르러서는 왕권이 크게 성장되어 절대주의 사상이 지배하게 되었고, 17세기 이후에는 극단적인 전제 정치를 지양하고 정치의 합리화를 도모하면서 대중의 이익을 중시하여 인망을 얻으려는 계몽적인 전제주의가 일어났다.

18세기에는 옛 사상을 배격하고 정의와 인도를 제창하는 ☞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이것은 마침내 자유 민권 운동으로 발전했고, 나아가서는 혁명 사상으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서 산업 혁명에 의한 근대화가 시작되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 등,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었다.
또한이성 만능의 ☞ 계몽주의에 반대하여 ☞ 낭만주의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19세기에 이르러 이성적인 계몽주의가 막다른 곳에 이르자 사람들은 미적인 생활과 풍부한 감정의 생활을 흠모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고전주의가 생겼고,뒤이어 낭만주의가 등장하였다.
낭만주의의 흐름은 위대한 철학과 예술을 생산함으로써 화려한 근대 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음악사에 있어 낭만주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문학에서는 1700년 ~ 1830년경을 낭만주의의 시기라고 말하고 있으나,음악에서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를 통틀어 일어난 역사적인 조류를 말한다.

낭만주의 음악은 결국 자유주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산업 혁명으로 인한 강철의 자류로운 공급과 야금술ㄹ의 발달로, 그 전까지는 볼 수 없던 악기의 개량과 관악기 등의 새로운 개발을 볼 수 있었다.

피아노의 음역은 1825년에 이르러 7옥타브로 넓어졌으며, 금관 악기는 현대식으로 개량되었다. 19세기 전반의 초기 낭만주의 음악의 일반적인 특징은, 새로운 화음과 화성 진행, 반음계법에 의한화성 양식이 발전하였고, 절대 음악에 대한 표제 음악의 유행과 개인적인 감정이 중요시되었다. 말하자면 낭만주의 음악이란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어떤 형식에 구해됨이 없이 마음대로 표현한 음악인 것이다.

이 시기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음악이 크게 발전했으며, 소나타의 구조에 구애됨이 없이 악곡의 형식은 다양화 되었다. 따라서, 연주 기술은 초인간적인 기교과 종횡하는 기교주의자(virtuoso)의 출현을 보았다.

악곡에 있어서도 쇼팽과 그 밖의 음악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피아노 소품이 많아졌고, 고전주의 시대와는 달리, 보다 기교적이고 화려한 피아노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많이 작곡되었다.

교향곡에 있어서는 표제적인 경향을 볼 수 있으며, 서곡은 연주회용 서곡 등 독립된 관현악곡을 작곡하였다.

오페라에 있어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낭만주의 오페라가 점차 기세를 드높이면서 발전했지만, 역시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우세했다. 그리고 종교적인 작품은 전에 비해 쇠퇴한 감이 있다.

가곡에 있어서는 독일의 예술 가곡으로서의 가곡의 지위가 확립되었다.

악곡의 형식과 악곡의 구성에 있어서는 고전 형식의 응용과 변형을 볼 수 있다.
교향적인 형식도 다양화하여 표제적인 교향곡, 교향시, 교향적 모음곡, 연주회용 서곡 등이 나타났으며, 악곡의 통일성과 연대성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베를리오즈의 고정 악상(固定樂想 : Ideefixe)과 리스트의 주제의 변용(變容), 바그너의 지도 동기(指導動機 : Ieitmotiv), 프랑크의 순환형식(cyclic form)을 볼 수 있다.

관현악에서는 표준 편성이 확립된 동시에 그 기술이 크게 발달했으며, 피아노의 연주 기교도 크게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고전파 낭만 음악의 교량적인 역할을 하였다. 베버, 로시니, 베를리오즈,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쇼팽, 리스트 등은 이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였다.

19세기 후반 후기 낭만파에 이르면 화성 양식이 극도로 성숙해져서 조성(調性) 조직에서 이탈하려는 징조를 보이게 된다.

한편 민족주의 음악의 융성과 후진 여러 나라 음악이 성행함을 볼 수 있다. 이는 러시아의 글린카를 원조로 하는 러시아의 5인조를 비롯하여 노르웨이, 핀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스페인 영국 등 많은 나라들에서 각기 그 나라의 향토색 짙은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음악을 창출해서 창조해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나라의 민요와 민속 무곡을 발굴하여 거기에 나타난 민족적인 정서가 담긴 민족의 고유한 맛이 담긴 음악을 창조하려는 것이다.

한편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규모가 큰 교향적인 작품과 극음악이 융성을 보였다. 교향곡과 연주회용 서곡에서 발전한 표제 음악으로 된 1악장의 교향시가 창작되었고, 교향적인 모음곡이 생겼다. 묘사적인 것과 발레 음악, 오페라 등에 의한 모음곡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바그너는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이 이상을 실현시켜, 음악을 극에 종속시키는, 이른바 악극(樂劇 : Musik drama)을 창안하였다.

그 밖에도 오페라에서는 ☞ 사실주의 ☞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작품이 나타났다.
또한 발레(ballet) 음악도 이 시기의 주목할만한 장르의 하나였다. 그리고독일은 물론 프랑스와 러시아 등지에서도 예술 가곡이 발달하였다.

악기법은 후기 낭만파 음악에 이르러 교향적인 색채가 풍부한 관현악이 발달하였다. 플루트의 명수인 독일이 '뵘'이 키 장치를 붙여 플루트를 개량했고, 트럼펫이 등장했으며, 코넷(cornet) 등 금관악기에 밸브(valve)가 부착되었다. 그 밖에 색소폰(saxophone)이 아돌프 색스에 의해서 발명되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바그너, 베르디, ㅡ랑크, 스메타나, 드로브자크, 그리고, 마스네, 림스키 코르샤코프, 포레, 푸치니 등이 있다.

낭만주의 시대의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명 연주가의 출현이다. 이는 연주 여행의 가능성이 높아진 결과라고 하겠지만, 파가니니와 리스트 등의 거장을 위시하여 기교주의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이처럼 낭만주의 음악이 19세기 전체의 음악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 19세기 음악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도 이 시기의 음악은 자주 연주, 감상되고 있다.

음악이란, 그리스의 신화에 나타난 바와 같이 ☞ 디오니소스적인 주관적이고, 동적이며, 직관적이고 감동적, 낭만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 아폴론적이며 객관적인 음악 형식과 완성, 그리고 완성에의 예술의 상징이며 고전적인 절대 음악이 있다.

이와 같은 두 스타일의 음악이 예로부터 되풀이해 내려왔던 것이다.
따라서, 19세기의 낭만파 음악이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강하게 나타난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들 두 개의 스타일은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