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적 흐름

현대 음악(20세기)

20세기에 들어와 현대 음악은 반(反) 바그너주의, 반(反) 주관주의로 그 양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20세기는 음악사상 17세기 이래로 하나의 큰 전환기로 보아야 하는데, 이는 비단 음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모든 예술, 과학과 사회 사조, 나아가서는 사회 구조와 인류의 생활 상태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전환기를 맞는다.

음악 양식의 변천이란 인간의 생활 의시기과 사고 방식의 변천이 음악상에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작곡자, 연주자, 청중의 의식 변화 등에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흔히 1890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의 음악을 근대 음악이라고 부른다. 1890년은 낭만주의 음악의 해체기로 보고 있는데, 그 후 낭만주의의 유산을 풍부하게 받으면서 또는 그 반동으로 새 양식이 대두하게 되었다.

185년 이후, 리스트와 바그너의 작품에서는 조성(調性 : tonality)이 더욱 애매해져 갔다. 또한 이 시기의 작곡가들은 장조, 단조 이외의 음계를 사용하거나 반음계를 많이 사용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사회적으로 큰 변혁을 가져왔다. 객관적인 순수한 음의 움직임으로서의 음악을 재인식하게 된 것이다. 즉, 음악은 객관적이어야 하며, 때로는 기계적이고, 화성적인 것 보다는 대위법적이며, 화음은 불협 화음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편성도 그 규모가 작아져 실내악을 중시하였고, 절대 음악으로 복귀하려는 경향을 보여 형식성과 명쾌한 리듬 등이 중시되었다. 현대 음악이란 시기와 함께 변하는 것이므로 어느 시기를 꼬집어 확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대 음악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것으로 말하는 이도 있고, 그 범위를 좁혀1945년 이후의 음악을 현대 음악으로 보는 이도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세계 각국의 교류가 활발하게 되어 영토와 민족 문제를 둘러싼 나라간에 이해의 대립으로 세계 대전이 일어남으로써 여러 나라들의 변동이 생겼다.

그 후, 원자 시대가 되자 새로운 문명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현대 음악의 한 특징으로서, 조성과 화성을 비롯하여 멜ㄹ디와 리드에 대한 시로운 삭 방식이 대두되었으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위법과 같은 옛 시대의 양식이 부활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음향 발생의 장치로 구체 음악, 전자 음악 등 전위적인 음악이 나타났으며, 악보와 레코드, 라디오, TV 등의 발달과 보급으로 전세계를 통해 순식간에 새로운 음악이 보급되는 등 질적인 측면이나 양적인 측면에서나 모두 증대(增大)되었다.

창작면에 있어서는 방대한 오케스트라보다는 신고전주의적인 경향에 발맞추어 각종 중주(衆奏)곡과 손편서으이 합주곡이 관심을 보였으며, 오페라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오페라와 더불어 뮤지컬(musical)이 생겼고, 발레와 함께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새로운 양상을 볼 수 있다.

형식에 있어서는 기성 형식의 응용과 변형, 나아가서는 그 부활을 볼 수 있으며 새로운 음의 소재로써 구성법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아기 편성이 탐구되었고 새로운 음향 장치에 의한 시도가 거듭되었다.

1890 ~ 1981년 사이의 음악

1850년 이후의 후기 낭만파에서 보여 준 조성의 애매함은 물론 무조적(無調的 : '조성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인 수법에의 접근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학과 회화 등 근접 예술과의 영향도 많이 나타났다.

인상주의(印象主義 : Impressionism)

프랑스의 드뷔시가 창안한 인상파 음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 제1차 세계 대전까지 걸쳐 일어났다. 이는 ☞ 낭만주의 에서 현대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악파이다.

이 음악은 프랑스 인상파의 회화와 상징 문학의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자연계의 여러 가지 현상, 즉 곧 소실하든가 쉴새 없이 변화하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해서 예술가가 순간적으로 받은 생기에 찬 감응이며 응답이다.
그러므로 인상이란 외부 세계의 묘사가 아니라, 한 번 마음에 작극된 내적인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음악의 다이내믹한 감동보다는 음색, 뉘앙스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 수법의 중심이 되느 것은, 항상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표현하기 위하여 조색판(調色版)에 비찰을 혼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각 작용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빛깔 그대로를 화면에 칠하여 그대로의 밝음을 재현시킨 다는 것이다.

드뷔시는 1892년에 말라르메의 상징시에 곡을 붙인 [목신(牧神)의 오후]에의 전주곡으로 지금까지의 작곡법을 떠나 인상주의 수법을 확립시켰다.

원시적인(Primitivism) 음악

미개 민족과 원시 민족의 소박하고 야성적인 음악을 소재로 한 음악이다. 이는 19세기 말경, 이국적(exotic)인 체재를 음악에도 도입하여 새로운 것을 표현하라고 한 것이다.

원시주의의 경향은 유럽 자본주의와 부정에서 오는, 동양에 대한 동경을 표시한 데 기인한 것이다. 당시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유럽이 시민 계급의 존재에 대한 불안과 생활에의 권태 등에서 이국적인 소재를 희구한 것이다.

원시 음악은 지나치게 세련된 추상미의 연약한 현대 음악에 대해서 원시 예술의 힘찬 원기를 되찾아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음악이라 하겠다.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곡인 [불새], [페트루시카], [봄의 제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표현주의(表現主義 : Expressionism)

인상주의의 대립으로 회화에 서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의 표현이란 말은, 예술가의 내면적인 생활에 나타나는 것을 밖으로 내보내어 창조하는 주관적인 표현이다.
즉, 제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긴박한 불안과 세기말적인 절망, 격동과 절규 등을 강렬하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멜로디는 무조(無調: atonality)이고 화성은 불협화음을 사용해는데, 이는 추상 세계라고 할 만한 12음기법에 이르는 과도기에 있어서의 표현주의로 간주할 수 있다.

인상주의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데 반해,표현주의는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는 특히 쇤베르크를 위시한 작곡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쉰베르크의 멜로 드라마 [달의 피에로]와 교향시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Op.5를 들 수 있다.

1918년 ~ 1945년 사이의 음악

1890년 ~ 1918년 사이, 즉 제1차 세계 대전까지를 후기 낭만파 음악 시대라 부르는 것처럼, 1918년 ~ 1945년까지의 양차 대전의 기간은 신고전 시대라 할 수 있다.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 Neoclassicism)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음악을 넓은 의미에서 보통 '신고전주의 음악'이라고 한다.
이 시기의 음악은 낭만주의음악에서 현대 음악에 이르는 과도기이기도 하다.

신고전주의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지나친 주정성(主情性)과 표제 음악적인 경향에의 반발로서,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등장한 음악 사조이다.
이 음악은 고전 음악과 같이 간결한 형시기에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특히 주관적인 정서의 과잉이라든가 방대한 관현악의 편성, 반음계의 남용, 표제적인 내용 등에 대한 반(反)낭만적 또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객관적인 음악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를 주축으로 부조니, 사티 등에 의해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바르토크는 민족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 어법으로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말하자면 그는 민족적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12음주의(12音主義 : Dodacaphonism)

쇤베르크가 종래의 조성 음악에서 벗어나 무조성의 체계화를 시도하여 창조한, 12음 기법으로 작곡한 음악을 12음 음악이라 한다. 이 기법은 1옥타브 안에 있는 서로 다른 12개의 음을 1회씩 일정한 순서에 따라 사용한다.
여기서 세리(serie)라고 하는 음렬(音列: tonreihe)을 만들어 이 세리를 여러 가지로 조작하여 음악을 만드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전통 음악의 음 조직을 해체하고, 12개의 음을 모두 평등한 가치로서 독립시켜 새로운 음의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장대한 곡에 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으며, 음을 중복해서 만드는 기능 화성(機能和聲 : functional harmony)적인 성격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선적(線的)인 대위법의 수법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이 음악은 쇤베르크의 제자인 베베른과 베르크에 의해서계승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세계 여러 나라에 보급되어 더욱 새로운 발전을 보였다.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 : Neue Sachlichkeit)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일어난 독일의 예술 사조로서, 이전의 주관적인 표현주의에 대한 강한 반동으로 생긴 것이다.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을 철저히 하려고 한 점에서는 신고전주의와 같은 경향인데, 신즉물주의란 본래상의 미술 용어로, 주로 독일에서 일어난 예술 사조를 일컫는다.

신즉물주의 음악은 표현주의의 흥분성을 제거해 버리면서 건강하고 명확하게 현실에 부합되도록 사물의 핵심을 보고 또한 파악하려는 것이다.

사회주의(社會主義) 리얼리즘(Social Realism)

19세기의 러시아 음악은 5인조 등의 작곡가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들에 비해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이래로 러시아는 세계 민족 음악 운동의 선구자 내지는 추진 세력이 되어 왔다.

1917년의 혁명을 계기로 1920년 경에는 예술에 있어서도, 혁명적인 것 또는 전위적인 것이 용인되었으며 1928년 제1차 5개년 계획을 계기로 예술 부문에까지 이데올로기의 강화가 시작되었다.

1930년에는 '혁명에 있어서는 민족적,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주의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1934년에 이르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 후 당시의 정치적 요청에 따라 서구적인 ☞ 모더니즘을 깨끗이 털어 없앰으로써 작곡 양식은 19세기로 되돌아간 경향이다.

사회주의적 창조 방법을 추구하는 이 음악은 개인주의적 형식주의에 의해 행해진 대중과 예술의 분열을 없애고, 개성적인 창조 활동을 사회에 재통합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이념을 고도의 기술을 통해 간결, 명랑하고 진실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적 예술 창조의 방법이기도 하다.

1945년 이후의 음악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지금까지 폐쇄되었던 국제적인 문화 교류의 길은 다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기 위한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1950년 무렵에 가서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에는 반낭만적인 사조가 강한데 비해,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메시앙과 같이 르네상스와 중세기의 기교의 부활을 꾀하는 작곡가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는 아주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경향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여기서는 세대의 교체가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뮈지크 콩크레트(Musique Concrete: 具體音樂)

이 음악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인 1948년에 프랑스 파리 방송국의 기사 셰페르에 의해 처음 창시된 새로운 표현 방법이다.
그 특징은 현실에 구체적으로 존재해 있는 음향을 자기(磁氣) 녹음 테이프에 녹음하여 그 음향을 중복하든가 녹음기의 회전 속도를 바꾸어 가며 음질을 변화시키면서 구성하는 음악이다.

이것은 처음에 레코드로 만들어졌으나, 얼마 후에는 테이프 레코드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악보와 연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그것이 전자 음악과 공통되는 점이다.
하지만 악음(樂音)으로 구성되다는 면에서 본다면 이는 반음악적이다.

전자음악(Elektronische Musik)

이 음악은 1950년, 쾰른 방송국에서 실험을 시작하여 1953년에 12음 음악의 이론가인 아이메르트 박사의 지도하에 연구된 것으로서, 전기 발전 장치에서 발생한 음향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합성시켜 녹ㅇㅁ 테이프에 녹음, 편집하여 구성한 음악이다.

구체 음악이 자연음을 사용한 데 반해서 전자 음악은 전자음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너데 전자 음악의 표현 영역은 대단히 넓어서 일반 악기로서는 따를 수 없는 빠른 템포와 정밀한 리듬, 그리고 미묘한 음향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1956년 슈톡하우젠이 작곡한 [소년의 노래]는 그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