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용어의 이해
모음곡이란 몇 개의 곡을 하나로 모아 묶은 기악곡이라 할 수 있다. 몇 개의 악곡을 하나로 모은다는 점에서, 모음곡은 보통 소나타나 교향곡과 같다고 할 수 있지만, 교향곡이나 소나타처럼 곡 상호간에 내면적인 연결이 없으며, 단지 성격이 다른 곡을 대조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음곡은 크게 고전 모음곡과 근대 모음곡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과 작곡자에 따라, 악기 편성과 구조 등은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전 모음곡
고전 모음곡은 16세기에 처음 생겨 17세기에 성행한 것으로서, 바로크 시대의 주요한 기악 형식의 하나이다. 이것은 무곡의 성격을 가진 몇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는 같은 조성(組性)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들 고전 모음곡은 바흐와 헨델 시대에는 궁정과 교회에서 많이 연주되었고, 지금도 흔히 연주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처럼, 모음곡의 시발은 16세기경이라고 하겠는데, 그 형식의 기반이 되는 것은 중세기 말의 사교 무도라든가 민속 무곡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박자에 있어서도 2박자, 3박자 등 성격이 다른 2곡 혹은 3곡 이상이 무곡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편 독일의 작곡가들은 모음곡을 하나로 통일하는 악곡 형식을 생긱해 내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작곡가들은 그와는 달리 자류롭게 모은 무곡집을 만들었다.
고전 모음곡의 형식을 확립시킨 사람은 17세기 중엽, 독일의 작곡가 프로베르거였지만, 모음곡의 표준이 될 만한 것은 18세기 이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모음곡을 정점으로 간주한다.
이상의 4곡은 모두 같은 조를 사용하여 통일시키고 있다. 상술한 모음곡의 형식은 합주곡 혹은 독주곡으로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후 형식이 확대되어 사라반드의 전후에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무곡을 삽입시켜 사용하였다.
이상 여러 곡들은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무곡 등을 모음곡으로 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는 관현악 모음곡만 4곡을 썼는데, 그의 모음곡을 살펴보면 본래의 무도 음악적인 성격을 벗어나 순 기악곡의 형태로 바뀌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바흐가 주로 쾨텐 시절에 쓴 것으로서, 4곡의 작품은 모두 다르지만 현악 4부에 몇 개의 관악기를 배치하였으며, 저음부에서는 쳄발로를 사용하였다.
헨델의 모음곡 [수상음악]은 20곡이나 되는 긴 작품으로서 비교적 자유롭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왕궁의 불꽃 음악]은 4곡으로 되어 있지만 처음의 장대한 서곡 이외에 새로운 무곡도 삽입시켰다.
이탈리아에서는 18세기 중엽에야 프레스코발디와 같은 작곡가에 의해서 모음곡이 추천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라고 하는 자유로운 모음곡도 유행했다.
코렐리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프렐류드, 알르망드, 쿠랑트, 지그 등을 넣어 모음곡을 작곡하였다.
근대 모음곡
18세기 후반, 즉 1750년경에 이르자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은 쇠미해지고 대신 디베르티멘도(divertimento: 嬉遊曲)와 카사치오네(cassazione: 18세기 기악 합주곡) 등으로 대치되었다.
이 시기의 모음곡은 지난날의 모음곡에 비하면 매우 자유로운 것이었다. 예컨대, 오페라와 발레(balet)극의 부수 음악, 영화 음악 등도 여기에 포함시켜 관현악곡으로서의 모음곡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1모음곡, 제2모음곡만 해도 그가 1872년에 작곡한 입센의 시극 [페르 귄트]의 부수 음악으로 쓴 것으로 23곡 중 각기 4곡씩을 추려 2개의 모음곡으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 음악 15곡 중에서 8곡을 뽑아 모음곡으로 만든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모음곡에는 이따금 교향 모음곡(symphonicsuite)이라는 명칭이 붙는데, 그것은 악곡의 배열이라든가 악곡의 구조가 교향곡 풍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 즉 1915년부터 1930년경에 이르러 고전적인 정신의 부활을 꾀하려는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바흐로 돌아가라'는 구호가 나오는가 하면 프랑스에서도 고전을 예찬하는 작곡가들이 나타났다.
한편 근대와 현대에 이르자 젊은 작곡가들에 의해 독주가 있는 실내악을 위한 모음곡들이 작곡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