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그

Grieg, Edrard Hagerup(1843~1907)
노르웨이

에드바르드 하게르프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노르웨이 민족음악파를 창시한 작곡가.
활동년도 : 1843년 6월 15일 (노르웨이 베르겐) - 1907년 9월 4일 (베르겐)

라히프찌히 음악원 음악수업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리그(예전에는 Greig) 가문은 그의 할아버지 때 쿨로뎅 전투 후에 노르웨이로 이민하였다. 아버지 알렉산더는 베르겐 주재 영국영사였고, 어머니 게신 하게루프는 노르웨이의 안정된 가문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음악을 배웠다.

12세부터 변주곡 등을 작곡할 정도로 악재를 보였다고는 하나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가를 지망한 것은 15세 무렵 노르웨이 태생의 명바이올리니스트 불의 주선으로 라이프찌히 음악원에 입학하면서 부터였다. 4년간 유학 중 그는 독일 음악의 전통을 마스터 했고 그것은 그의 음악의 핵심이 되었다. 졸업 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노르드라크라는 노르웨이 청년과 친교를 맺으면서 그리그는 철저한 민족주의로 방향을 정했다. 민족주의적 음악에 대한 그리그의 집념은 그로하여금 사실상 조국의 민요와 춤곡의 편곡인 여러 작품을 쓰게끔 했다.

이 시기에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으며 끝내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코펜하겐과 북부의 민속가락

1863년 코펜하겐으로 가서 1864년 노르웨이의 젊은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 리카르트 노르로크와 사귀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했다. "그를 통해 북부의 민속 가락과 내 자신의 특성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그리그는 말한 바 있다.

1864~65년 겨울, 스칸디나비아의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코펜하겐 음악협회 '외테르프'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결혼 그리고 노르웨이 생활

1867년 사촌 누이동생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고, 그녀는 그리그의 가곡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가가 되었다.
1865~66년, 1869~70년 겨울을 로마에서 보내던 중,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열광적 찬사를 보낸 리스트와 입센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1866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 정착하여 노르웨이 정부의 종신연금(1,600크로나)을 받기 시작한 1874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85년 베르겐 근방에 '트롤드하우겐'이라는 집을 지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스칸디나비아, 유럽, 영국에서 연주 여행을 가졌으며, 1888년 런던에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스스로 연주했다.

노르웨이의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리그의 음악은 섬세한 서정 감각으로 유명하다.
1867~1901년 사이에 10집으로 된 피아노곡 〈서정 소곡집 Lyriske Stykker〉을 작곡했다. 활기찬 리듬은 민요와 연관이 깊으며, 화성법은 후기 낭만주의 양식에서 발전한 새로운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작품 16과 〈현악 4중주 G단조〉 작품 27, 바이올린 소나타 및 피아노 소나타 각각 3곡 등 일부 작품에서 자유 소나타 형식을 썼다.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 작품 24는 노르웨이의 민속 선율에 바탕을 둔 변주곡이다.
그의 작품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은 독일 낭만파에 가깝지만 그는 향토색을 강하게 나타냄으로써누구보다도 노르웨이의 국민성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북유럽의 음악을 국제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교육가로서의 비중 또한 크다고 하겠다. 그의 멜로디가 극히 향토적임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가 취급했던 하모니는 해당된 작품에 알맞은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조바꿈에 있어서도 이를 대담하게 취급하여 색체적인 효과를 높였다. 그의 작품은 그가 대피아니스트인 만큼 피아노곡을 비롯하여 가곡, 실내악 등 비교적 작은 형식의 작품에 뛰어났었다.

만년(晩年)

1877년부터는 피오르드 근처의 경치좋은 곳에서 작곡을 전념했다.
그 무렵 작곡한 많은 피아노 소품과 성악곡 등에는 피오르드의 아름다운 풍경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외국에서 초청도 여러번 받았으나 건강이 악화돼 실현에 옮기지 못하고 겨우 영국의 초청에 의해 피오르드를 떠나 베르겐에 다다랐을 때 그만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그리그는 기구하게도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곳 베르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 졌고 유해는 그가 사랑했던 피오르드의 바위동굴에 안치되었다.

피아노 음악의 특징

그리그의 작곡스타일은 쇼팽의 스타일 만큼 심오하지는 못하나 이에 못지 않게 독특하다.
번번이 그리그의 선율은 두마디 밖에 안되는 짧은 프레이즈나 모티프로 분해되고 민요에서 연유된 방식임 - 그런 후 이 선율 단편(melodic fragment)들은 변형되거나 동형반복적으로 다시 진술된다.

그의 화성구조가 지극히 관습적일 때도 있으나 상호 관련성이 희박한 코드를 멋있고 재치있게 사용하기도 한다.
반음계성은 그리그 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히 장식적인 것에 불과할 수 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어떤 곡의 기본구성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요소의 경우가 더 많다. 그리그는 아주 통상적인 기법의 참신한 의미를 부여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

글 출처 : Golden Classic